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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Thu)

음악의 문법들 – 강대명 작곡가와의 대화

“이 책은 […] 음악의 기초(ABC)를 다루는 책이 아니다. 음악의 ABC가 될 수 없는 이유는 ABC뿐만 아니라 ΑΒΓ, АБГ, אבּב, 심지어는 あいう도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어떻게든 이 알파벳이 있어야겠지만, 모든 음악은 자기만의 알파벳을 갖는다.” (니콜라스 쿡,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음악에도 제각각의 언어가 있다면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는 오래된 구호는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각자의 언어가 탄생한 것처럼, 음악들은 제각각의 문법과 기호를 형성했고 사람들은 제 나름의 음악적 모국어를 구사한다. 하지만 세계가 조금씩 뒤섞이고 있는 이 시점에 한 음악이 어떤 언어로 쓰였는지, 누군가의 음악적 모국어가 무엇인지 정확히 지목하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수많은 음악들이 공존하고 충돌하고 조합되는 지금-여기에서 음악은 어떤 언어와 문법으로 만들어지고 있을까.

신예슬 한동안 제게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문제는 이 서유럽 전통 음악이 나에겐 모국어 같은 거였지만 실은 나와 굉장히 먼 음악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나는 음악을 어떤 언어로 듣고 사유하고 있었을까, 그게 정말 어떤 의미로든 내 것이었을까, 이런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 다시 재고하게 된 영역이 국악과 현대음악이 공존하는 그 회색지대였어요. 결과의 좋고 나쁨이나 구체적인 방법론은 작곡가에 따라 다릅니다만 근본적으로 작곡가들이 왜 그 둘을 결합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것인데요. 강대명 작곡가의 경우, 그 두 언어를 결합하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대명 네. 저에겐 그것들을 결합한다는 게 딱히 스트레스도 아니고 그냥 저라는 한 개인이 다룰 수 있는 편한 언어들이에요. 음악적 정체성을 국적에서 찾으려는 것도 아니고, 국악과 현대음악을 대통합하겠다는 야망이 있어서 쓰는 것도 아니고 둘 다 저한테 배어있는 것들인 거죠. 아마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악기를 다뤄서 그런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 때는 국립국악학교·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 가야금을 전공했고, 초등학생 때는 방과 후 수업에서 해금이나 단소 같은 것도 배웠고, 피아노도 동네에서 학원 다니면서 계속 했었어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서 작곡을 기초부터 배웠고 대학을 작곡과로 갔죠. 어렸을 땐 이 둘을 완전 별개로 생각해서 악기는 악기대로, 작곡은 작곡대로 했었어요.

신예슬 하나는 한국 전통음악의 연주고, 또 다른 하나는 서유럽 전통음악에 기반한 창작이니 아예 분리된 것으로 여겨졌을 것 같긴 합니다. 그 둘의 접점은 언제 어떻게 생겼나요?

강대명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가 시작됐고 거기서 진은숙 작곡가한테 마스터클래스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매년 제 곡을 가지고 꾸준히 찾아갔었어요. 근데 서양 악기들로만 쓴 곡을 가져갔을 땐 나름 열심히 썼는데도 ‘이런 건 내가 해줄 말이 없어. 너는 프로필에는 국악도 했다고 써냈는데 이런 곡은 그냥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니니. 네 음악을 찾아라’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가야금과 기타의 이중주곡 <Scenes>를 써서 처음으로 가져갔는데 이건 좀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때부터 제가 잘 알고 있는 국악기들을 더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신예슬 악기 편성을 섞는 게 사실 쉽진 않잖아요. 한 번 섞어서 써보고 앞으로는 절대 이런 편성으로 안 하겠다고 포기하는 작곡가들도 꽤 있고요. 음색이나 음량, 그 악기와 연계된 어법도 서로 다른 만큼 음악적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큽니다. 국악기를 쓰면 조금 더 새로운 음악을 쓸 수 있겠다, 혹은 내가 확실히 잘 아는 악기니까 자신 있게 쓸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셨던 걸까요.

강대명 현악사중주나 피아노 오중주 같은 전통적인 편성은 제가 잘 못 쓰겠더라고요. 이미 너무 좋은 곡들이 너무 많아서요. 저는 악기 조합을 섞어서 못 들어본 소리를 듣게 하는 데 관심이 많았고, 그런 면에서 국악기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거니까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섞으면 재밌는 걸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죠. 또 한때 작곡가 헬무트 라헨만(Helmut Lachenmann)의 음악에 빠져있었는데, 이 사람은 현악사중주를 쓴다고 해도 그게 네 개의 독립된 악기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악기인 것처럼 곡을 쓰고 오케스트라도 하나의 악기처럼 곡을 써요. 라헨만의 그런 작품들을 열심히 들으면서 저도 새로운 악기 편성을 마치 하나의 악기를 만드는 것처럼 다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서로 다른 전통의 악기들을 어떻게 균형 있게 들려줘야 하는가를 고민하다 보니 서서히 저만의 어휘가 생기더라고요. 그런 걸 하나씩 모으다 보면 어휘가 점점 더 많아지고 그게 나중엔 다 쌓이고 쌓여서 제 언어가 되겠다 싶었어요. 그러다 국악기만으로도 곡을 쓰기도 했죠.

신예슬 현악사중주 같은 편성이 부담스럽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그 악기와 그 편성에 내재된 관습이 있기 때문인 거죠. 마찬가지로 국악기를 쓸 때도 이런 소리를 내야만 할 것 같고, 이런 진행을 보여줘야만 할 것 같은 관습을 너무 잘 알고 계셨을 텐데, 그런 부분은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강대명 맞아요. 저는 우선 장단이랑 5음 음계를 안 쓰려고 했어요. 요즘은 좀 다르긴 하지만 국악 작곡하는 친구들이 가장 못 벗어나는 게 바로 이 둘이에요. 그게 마치 꼭 써야 하는 ‘국악의 정체성’인 것처럼 받아들여졌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걸 안 쓰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봤죠. 또 국악기는 직접 손으로 안 만지면 쓸 수가 없는 악기에요. 국악기는 마음만 먹으면 제가 악기를 다 다뤄볼 수 있고 메커니즘도 잘 알고 가지고 있는 악기도 꽤 있으니까 소리를 이리저리 실험해보는 게 가능했어요.

신예슬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혼합편성을 많이들 시도하는데요.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니까 계속 편성을 섞는 거겠죠? 그 음악적인 장점이 뭔지 궁금합니다.

강대명듣지 못했던 새로운 소리에요. 정말 못 들어본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이 악기들이 각자 전통이 다르긴 한데 나름의 공통점이 있어요. 기타랑 가야금 같은 경우는 주법이나 음량, 음역이 생각보다 비슷해요. 클라리넷이랑 첼로, 가야금, 타악기 편성으로도 곡을 썼었는데 이 악기들을 소위 일반적인 주법으로만 쓰면 소리가 정말 안 섞여요. 그래서 이 소리들을 어울리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측면을 굉장히 신경 썼던 것 같아요. 곡에 철학을 넣는다거나 이런 건 없었고 어려운 제목도 안 쓰고요. 옛날엔 곡 제목에 쓰려고 괜히 라틴어도 찾아보고 그랬는데요(웃음).

신예슬 괜히 편성까지 독일어로 쓰고 뭐 그런 거요.

강대명그런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언어로 제가 일상에서 느끼는 걸 곡으로 쓰는 게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최근에 쓴 곡 <Broken Radio 2>는 정말 제가 듣던 라디오가 고장이 나서 쓴 곡이에요. 라디오를 틀면 지직거려서 한번 쳐야 되고, 93.3으로 잡으면 두 채널이 동시에 들리기도 하고. 그런 소리들이 재밌었어서 그걸 가지고 쓴 거죠.

신예슬라디오에서는 실제로 지직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국악방송도 들을 수 있고 클래식 방송도 들을 수 있고 또 가요도 들을 수 있으니, 한편으로는 강대명 작곡가가 구사할 수 있는 여러 음악언어를 한데 포괄할 수 있는 유연한 소재였을 것 같기도 하네요. <Broken Radio 2>처럼 보통 일상적인 경험에서 창작이 출발한다면, 실제적인 창작과정은 어떻게 될까요. 컨셉을 잡고, 편성을 정하고, 그 후에는 오선보를 펼쳐두고 곡을 써나가나요?

강대명 저는 이면지를 펼쳐두고 이것저것 막 쓰고 어떤 건 버리고 또다시 정리해나가면서 거의 낙서하듯 스케치를 쌓아가는 식이에요. 언젠가는 굉장히 비싼 노트를 준비해보기도 했어요. 근사한 케이스에 악보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아름다운 스케치를 해가면서, 마치 악보 한 장이 그냥 포스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작곡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진은숙 작곡가도 그런 예 중 하나고요. 한번 시도해봤는데 저는 그렇게 잘 못 하겠더라고요. 초반에는 막 쓰고 막 버리는 과정이 필요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또 그냥 버려질 뻔한 이면지가 나중엔 값어치 있게 쓰이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요. 분량이나 시간, 컨셉, 구조, 하고 싶은 것들, 가능한 것들을 다 체크해두고, 두 악기를 조합해서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지 경우의 수처럼 여러 옵션을 다 적어두고, 여기서는 리듬이나 선율을 어떻게 구성할지, 농현을 할 건지 그냥 평이한 소리를 낼 건지 이런 거를 다 적어뒀다가 나중에 실제로 곡으로 옮길 땐 하나씩 지워가면서 곡을 써요.

신예슬 일종의 차트를 만들어놓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결국 국악기로 하는 걸 언젠가는 오선보로 옮기는 건데, 어떤 부분은 절대로 기록할 수 없지 않나요? 음정도 그 오선보에 갇힐 것 같고, 농현이나 시김새 같은 건 애초에 악보에 하나하나 적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를테면 알파벳으로 한국어를 적거나 한글로 영어를 적을 때 많은 뉘앙스가 탈락하는 것처럼, 악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강대명 아무래도 그렇죠. 근데 그건 말로 설명하면 돼요. 이 부분은 악보대로 할 필요 없고, 시김새를 이렇게 해주면 된다, 산조 조율처럼 낮춰서 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고요. 저는 악보를 먼저 보내더라도 리허설 때 만나서 설명해 드리겠다고 하고 리허설 때 많이 조정하는 편이에요. 저는 리허설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리허설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곡가에게는 ‘리허설 테크닉’이라는 게 정말 특히 중요한 것 같아요.

신예슬어떤 요청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리허설을 어떻게 계획하는가가 연주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치나요?

강대명 짧은 시간 안에 제가 원하는 걸 다 끌어낼 수 없으니까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정확히 말하는 거죠. 또 악보를 복잡하게 써놨다 하더라도 음악적으로 설득되기만 하면 연주자분들은 결국 다 해주시더라고요. 그냥 ‘맡기겠습니다’ 하면 끝까지 안 될 때도 많지만, 리허설 때 설득되면 어떻게든 나와요. 결국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지휘도 본인이 직접 연주하지 않지만 연주자들에게 음악을 끌어내듯, 이미 연주자에게 공이 넘어간 상황에서 작곡가들도 뭘 바라는지, 어떤 음악을 끌어내길 원하는지 얘기를 해야죠.

신예슬 리허설에서의 선택과 집중이 나중에 곡을 쓰는 경험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가 실제로 되고 안 되는지를 검증하면서 배우는 것들이 결국 나중에도 반영이 되겠죠. 얘기를 조금 옮겨볼까요. 곡에서 일상적인 경험을 풀어내려고 한다고 하셨지만 그 곡들은 여전히 현대음악의 문법으로 쓰인 것이겠죠.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클래식 레퍼토리를 크로스 오버 스타일로 선보이는 ‘레이어스’나 국악그룹 ‘이생’ 같은 활동은 완전히 다른 양식의 음악이고, 작곡가로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직접 연주자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이 서로 다른 작업들에서 각각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강대명 분명히 현대음악계에서 환영하는 음악이 있어요. 테크닉 화려하고 어렵고 악보도 복잡한 것들. 저도 처음엔 그런 데 매료가 됐었지만, 이런 곡은 일 년에 수십 개씩 쏟아져 나와요. 근데 어떤 사람 악보는 현대곡 같지도 않고 굉장히 허술한데도 소리가 너무 신선한 거예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결국 후자였어요. 악보가 아니라 소리로 들었을 때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었던 건데 물론 그렇다고 해도 만드는 게 쉽진 않아요. <Broken Radio 2>를 만들 때는 정말 너무 힘들어서 두 번 다시 작곡을 못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거의 2-3개월은 여기에만 매달려있어야 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짧은 기간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머리를 식히고 싶었고 음악으로 돈을 버는 것도 필요했고, 그래서 시작한 게 ‘레이어스’랑 국악그룹 ‘이생’이에요. 제가 현대음악계에서 항상 아쉬웠던 점들이 있어요. 한번 연주되면 다시는 연주가 안 되고, 녹화도 거의 CCTV처럼 하고, 청중 모으기도 힘들고. 그래서 단순히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현대음악계에서 못 해봤던 걸 해보고 싶었어요. 심각하지 않고 적당히 듣기 편한 음악,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도 만들고요. 레이어스는 영상으로 그런 관객들을 만나보고 싶었고, 이생은 공연으로 그런 관객들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신예슬저는 창작자가 아니지만 그 답답함만큼은 이해가 갑니다. 초연과 동시에 그 작품의 무대가 끝나버리고, 관객들도 얼마 없는 현장을 계속해서 보는 일이 공허하긴 해요. 공연에 대한 기대감도 점점 더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강대명 클래식도 마찬가지잖아요. 리사이틀홀에서 수많은 공연이 열리지만 현대음악계랑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죠.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저도 이제 안 다녀요. 정말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열심히 많이 다녔거든요. 그때 느낀 건 현대음악이 작곡가의 작품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마치 코스 요리처럼 완성도 있는 프로그램으로 즐기는, 기획과 연주와 작품이 다 맞물려 완성되어야 하는 경험이라는 거였어요. 또 관객들도 실제로 그걸 너무 잘 즐기는 분위기였고요. 여기처럼 작곡가 여섯 명의 작품 여섯 개를 그냥 무작정 넣어두는 식이 아니죠.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것도 결국 즐기는 건데 현대음악을 왜 듣지? 즐기는 문화가 없다면 우리나라에 현대음악이 필요한가?’ 이런 의문도 들었어요. 사람들이 보통 퇴근한 뒤에 즐기는 문화생활이 영화나 스포츠나 뮤지컬 같은 거잖아요. 따지고 보면 현대음악은 여기랑 경쟁해야 하는 건데 현대음악은커녕 클래식도 위태롭죠.

신예슬맞아요. 그래서 클래식계도 나름의 전략들을 취하죠. 연주자를 배우나 아이돌처럼 프레이밍하거나 홍보물 이미지를 뮤지컬에서 쓰는 것처럼 만들기도 하고요. 공연의 내용이 정말로 바뀐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달라 보이게 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시도를 음악계 내부에서는 대중에 영합했다거나 배반했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여전히 꽤 되는 것 같은데, 이런 시선이 현대음악계는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겠죠. 하지만 그 특정 계에서 벗어나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가 개인의 인지도가 높다면, 어떤 음악계에 귀속되어 있을 필요도 없고 그러기 위해서 특정 어법이나 전통을 따를 필요도 없겠죠. 경제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압박이 없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것 같긴 합니다.

강대명 배반…. 미디어 노출뿐만 아니라 소위 자기 라인 바깥으로 나가기만 해도 그런 시선이 생기는데요 뭐. 처음엔 성악가들이 ‘팬텀싱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봤지만 요즘은 못 나가서 아쉬워해요. 우승이 목표가 아니에요. 인지도를 얻고 오면 티켓 파워가 달라지니까 그래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한다고 해도 새벽에 방영되는 ‘수요음악회’에서 하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하냐에 따라 완전히 그 결과가 달라지잖아요. 계속 음악계 안에만 있다면 지원금에 의지해서 활동해야겠지만, 바깥에서 인지도를 얻으면 재정적으로 독립적인 활동이 가능할 거라고 봐요. 또 저는 이렇게 활동해서 돈도 벌고 유학도 가고 싶어요. 가서 고음악 배우면서 하프시코드도 하고 싶고, 제가 또 바흐 칸타타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국악을 하다 보니 옛날 게 좋더라고요. 네우마로 기보된 것도 읽어보고 싶고, 르네상스 음악도 해보고 싶고. 전 그냥 예전부터 이렇게 옛날 음악이 좋았던 것 같아요. 가요나 팝을 그렇게 많이 들으며 자라오지도 않았고요.

신예슬다시 작업 얘기로 돌아오자면, 레이어스에서 하는 작업은 클래식 두 곡을 섞는 거긴 하지만 사실 조금 더 근본적으로 살펴보자면 팝의 어법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곡의 길이나 구성, 전개방식 같은 걸 보면 말이죠.

강대명 맞아요. 딱 그런 걸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 가요를 점점 더 알아가고 있어요.

신예슬그렇게 하나씩 작업을 쌓아가다 보면 선택할 수 있는 음악의 어휘와 문법, 형식의 폭이 굉장히 넓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대명 네. 조금씩 더 많아지긴 하지만 그래도 불안감은 있어요. 그래도 제일 잘하는 게 뭔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서양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국악 하다가 온 사람’이고, 국악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서양음악 하다가 온 사람’이에요. 그냥 둘 다 한 건데 계속 그렇게 받아들여지면 좀 억울하긴 해요. 저는 둘 다 좋아서 한 거고, 이 둘을 섞어서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거거든요. 가야금도 재밌게 잘했고, 93.1 클래식 FM을 끼고 들었던 거고요. 물론 그런 과정이 군대에 갔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단절되긴 했지만요.

신예슬전통악대의 작곡병으로 계셨었다고 들었어요. 거기서 하셨던 작업은 또 다르겠죠.

강대명 거기서 요구되는 ‘군대의 문법’은 또 따로 있죠(웃음). 가서 제가 들었던 말은 이건 사람 상대하는 일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때 당시 듣기에는 폭력적이고 무식하게 느껴졌는데, 그 말이 저에게 계속 남아있긴 해요. <강남스타일>이 뜨면 그걸 해야 하고, 크레용팝이 뜨면 <빠빠빠>를 해야 하고, 사람들을 울려야 할 땐 인순이의 <아버지>를 해야 하는 거죠. ‘울려야 되는 문법’, ‘신나게 해야 되는 문법’이 있고, 또 그때그때의 트렌드를 아주 빠르게 반영해야 했어요. 그건 정말 제가 못 해보던 훈련이니까 그게 도움이 꽤 됐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뭔지를 배우기도 했죠. 그 이후로는 대중적으로 인지도 있는 음악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공연도 찾아다녔고 최근엔 리서치 차원에서 이루마 콘서트도 다녀왔어요.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해서 온 거긴 하겠고 공연도 좋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루마 콘서트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만족하더라고요.

신예슬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것, 그 인지도와 파급력은 정말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음악학계에서도 암암리에 퍼져있던 인식이 이루마의 음악은 가볍고 상업적이란 거였고, 학문적 고찰의 대상보다는 비판의 대상에 더 가까웠는데, 어느 순간 해외 음악학계에서 이루마를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로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무리 학계 내부에서 부정적으로 얘기했어도 결국 현장의 인지도가 워낙 완고했으니까 결국 학문도 그걸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는 건가 싶기도 했고요. 그런 걸 보며 대중화를 둘러싼 모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강대명대중화 이슈는 사실 국악이 더 심해요. ‘국악의 대중화’라는 아주 오래된 슬로건이 있잖아요. 김덕수 사물놀이패부터 시작된 말이죠. 송소희, 씽씽밴드, 이런 사람들이 계속 그런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보는데,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고 물론 이분들이 아주 전통적인 걸 하진 않지만 실제로 송소희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공연을 해왔기 때문에 공연을 너무 잘하고, 씽씽밴드도 마찬가지예요. 그 이슈에 대해서는 말이 언제나 많지만 다 국악의 대중화라는 모토로부터 시작되긴 했죠.

신예슬클래식도 대중화되어야 한다, 현대음악도 대중화되어야 한다, 국악도 대중화되어야 한다, 다들 대중화를 부르짖기는 하는데 이 음악들이 꼭 대중화되어야 할까요?

강대명 사실 뭐 그럴 필요는 없죠. 저는 요즘 국악의 대중화는 말만 들어도 지겨우니까 괜히 말장난처럼 ‘대중의 국악화’는 어때요?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하고 다녀요. 대중이 국악화 되려면, 국악이 사람들의 일상이 되려면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겠죠. 네이버에서 ‘국악’을 쳐보게끔 하는 게 일상이지, 어쩌다 한번 개량한복을 입어본다거나 어쩌다 국악 공연을 한번 가본다거나 하는 게 일상은 아니니까요.

신예슬현대음악, 국악, 팝 등 많은 영역을 다루고 계시지만 실제로 창작을 할 때 그게 서로 계속 영향을 주고받을 테고, 어느 하나로 딱 잘라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 같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현대음악이나 국악이나 팝이라는 일종의 양식이나 문법을 거쳐서 이 음악을 바라볼 가능성도 큰 것 같아요. 윤중강 평론가가 표현한 것처럼 강대명 작곡가가 정말 ‘바일링구얼’ 같다고 하면, 그 표현은 어쩌면 그 음악에 대한 말이라기보다도 ‘이게 현대음악이야 국악이야’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처럼 되어버리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여러 언어를 단순히 잘 구사하는 것이 목적일 것 같진 않거든요. 중요한 건 그렇게 해서 그 언어로 무슨 말을 해나가느냐, 어떤 음악을 만들어 나가느냐겠죠. 실제로 이런 다양한 언어들을 이용해서 어떤 작업을 더 해나가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강대명 캐릭터가 생겼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앞으로 써나가는 곡이 늘 그런 식이면 안 되겠죠. 뻔하다고 인식되는 것도 원치 않고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작곡가 모델은 스트라빈스키나 리게티에요. 물론 라헨만처럼 하나만 깊게 파다가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마침내 모두의 박수를 받는 것도 멋지지만, 저는 그럴 용기는 없어요(웃음). 스트라빈스키는 발레음악도 썼다가 신고전주의도 썼다가 음렬도 썼고, 리게티도 클러스터 썼다가 음향적인 걸 했다가 아프리카 리듬도 쓰는 식으로 이것저것 다 했던 것처럼, 저도 그런 작곡가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