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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1.(Thu)

게임의 규칙 - 태싯 그룹과의 대화

모든 것이 가능한 디지털의 세계, 시스템이라는 작품의 룰, 시청각의 인터랙티브와 즉흥이 발견되는 퍼포먼스. 태싯 그룹이 선보이는 작품들은 최신의 미디어와 기술, 알고리즘 등 21세기의 논리를 충실히 따른다. 태싯은 <Game Over>와 <Six Pacman>처럼 게임을 공연하기도, <Drumming>과 <In C>처럼 동명의 미니멀리즘 음악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청각적 질서를 구축하기도, <System 1, 2>, <Analytical> 처럼 자신들이 지지하는 창작의 방법론과 그 구조를 명확히 밝히기도, 그리고 <훈민정악>처럼 관객에게 성큼 다가가 말을 건네기도 한다.

‘알고리즘 아트’에 기반해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는 태싯 그룹의 작품은 음악도 게임도 영상도 아닌 알 수 없는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태싯이 위치한 곳은 그 모든 종류의 창작물이 의지하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무대다. 생각해보자. 무대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대체 무엇이 불가능했었는지, 어떠한 룰을 제시하지 않는 작품이 있었는지, 즉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시청각의 상호작용이 완전히 배제된 공연이 있었는지. 어쩌면 예술의 영역에서 벌어져 왔던 모든 사건은 나름의 룰에 맞추어 퍼포머들이 즐기는 일종의 놀이는 아니었을까? 태싯이 동시대의 언어로 건설한 무대는, 우리가 예술이라는 게임에 기대하던 아주 근본적인 규칙일지도 모른다.

신예슬 태싯의 무대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게임, 채팅, 추상적인 오디오비주얼 등 작업마다 다양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지만, 공연장을 찾아온 관객으로서 느끼는 또 다른 재미는 퍼포먼스가 무대 위에서 ‘생겨나고 있다’는 감각입니다. 몰입도가 상당할 수밖에 없는데요. 퍼포먼스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또 작업의 출발점은 어디인지, 무대 이전의 작업과정이 궁금합니다.

장재호 큰 프로세스는 여느 아티스트들과 비슷한 것 같아요. 출발점은 아이디어에요. <Game Over> 같은 경우는 테트리스를 하나의 악보로 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거고, <훈민정악>은 원래 라이브 코딩을 하려고 했던 건데 코딩 언어가 다 영어다 보니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그러다 그 언어를 한글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다가 그 작품이 나왔어요. 일반적으로 저희 작업은 ‘알고리즘 아트’를 베이스로 하니까 아주 정교하게 작업된 결과물을 만든다기보단 어느 정도 선까지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무대 위에서 즉흥으로 연주하게 되는 거죠.

박규원 아예 알고리즘에 대한 리서치에서 출발한 작업도 있어요. <System 2>는 흥미로운 알고리즘들을 작업으로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건데, 사운드를 먼저 만들어놓고 매 순간 입력값을 조정해서 사운드를 바꾼다거나 특정 알고리즘을 사운드에 대입시켜보는 식으로 구성돼요.

이진원 그 ‘알고리즘 아트’라는 게 쟁점이 되기도 했어요. 2009년에 저희 태싯 공연이랑 진중권의 기술미학포럼을 같이 했었는데, 그때 진중권의 의견은 알고리즘이 내놓은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든다고 거기에 손을 대면 그건 ‘알고리즘 아트’가 아니라는 거였고, 저희는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알고리즘으로 돌아가서 알고리즘을 수정하면 된다고 보는 입장이었죠.

신예슬 알고리즘으로 구축된 시스템이 결국 오디오비주얼이라는 시청각 아웃풋을 거쳐 즉흥적인 퍼포먼스까지 이어집니다. 작동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그 시스템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사운드를 들려줘야 하는 데다가 실시간으로 반응해야 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건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수준인 듯합니다. 시간도 꽤 걸릴 테고, 고려할 부분이 상당히 많을 것 같은데요.

이진원 보통 1년에 3-4개의 신작을 만들었는데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이젠 일 년에 한 작품만 하려고요. (웃음)

장재호 하나하나 코딩을 해서 만드니까 작업의 내부 시스템은 꽤 복잡해요. 보통 3-6명의 연주자가 참여하니 그 컴퓨터들의 신호를 하나로 모으고, 사운드랑 비주얼도 만들어야 하고요. 비주얼은 작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사운드만 듣고 저희가 설계한 시스템을 파악하긴 어려우니 시각적으로 그 시스템을 잘 드러내면서도 관객이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게 가장 큰 원칙이에요. 그래서 비주얼은 최대한 미니멀하게 구성하는 편이죠.

신예슬 사운드와 비주얼은 항상 연계되어 움직입니다. 작품의 아이디어는 사운드와 비주얼 둘 중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진원 <Morse ㅋungㅋung>이나 <System 1>은 이미지가 먼저에요.

박규원 <훈민정악>도 눈에 보이는 글자에 따라 사운드가 달라지니까 마찬가지고, <Game Over>도 테트리스의 블록들이 어디에 놓여있는지에 따라 사운드가 달라지니까 사운드가 우선하는 경우는 <Analytical> 정도인 것 같아요.

신예슬 그렇다면 시스템 구축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장재호 가장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제일 신경이 많이 쓰이는 건 안정성인 것 같아요. 공연하다가 컴퓨터가 멈추면 안 되니까요. 최근에는 사운드에 많이 집중하고 있어요. 시스템을 완성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까 우리 모두가 사운드를 전공한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사운드에 제일 신경을 못 썼거든요. 그런 부분이 항상 아쉬웠죠.

이진원 안정성, 사운드, 비주얼 모두 다 잘 해내야 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도 큰 부분입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시스템을 관객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보여줘야 하고, 시작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매끄럽게 이어져야 하니 완성도도 굉장히 많이 신경 쓰는 것 중 하나에요.

신예슬 그렇게 만들어진 시스템이 퍼포먼스 현장으로 넘어오면 또 다른 일들이 벌어지는데요. 무대엔 언제나 노트북이 있고 그 앞에 서서 연주자들이 계속 뭔가를 타이핑합니다. 그 노트북 화면 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이진원 그 광경을 다들 궁금해하시죠. 저희가 보는 건 관객들이 보는 화면하고 같은 건 아니고, 작업에 주로 쓰는 MAX/MSP와 C언어로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이 켜져 있어요. 프로그램 여러 개를 띄워놓고 거기에 데이터를 계속 입력하면서 뭔가 만들어가는 거죠. 근데 그 연주과정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니까 무대 위에서 서로 간의 대화가 꼭 필요해요. 그래서 각 연주자의 컴퓨터엔 MAX/MSP로 만든 채팅 프로그램도 열려 있어요. 연주가 잘 되고 있으면 괜찮지만, 뭔가 꼬였을 땐 저희끼리 얘기를 해야 하니까요. 가끔은 ‘2번, 볼륨 너무 커.’ 이런 말도 하고요.

신예슬 즉흥이라면 연주에 대한 사전 합의가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이진원 대강의 연주 길이는 잡아놓는 편이에요. 특별한 경우에는 공연 때 써먹을 멘트를 미리 정해놓기도 하고요. <훈민정악> 같은 경우는 컨셉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 설계해놓은 순서가 있어요. 동그라미나 네모, 세로줄 같은 기본 도형처럼 보이는 것들을 적다가 어느 순간 네모와 세로줄을 같이 적어서 ‘미’라는 글자가 보이도록 하고, 그러다가 ‘안녕하세요’ 라고 치면서 관객에게 말을 걸고, ‘박수 좀 쳐주세요’라고 타이핑해서 리액션을 요구해요. 그런 식으로 도형, 글자, 말, 대화로 서서히 확장해가는 와중에 저희는 연주자들끼리도 서로 얘기하면서 앞으로의 진행을 계속 합의해나가죠.

박규원 <Drumming>은 공연에 대한 계획도 조금 상세한 편이고 또 다 같이 끝내는 게 멋있는 작품이라 끝을 위한 타이머가 있어요. 연주를 하다가 누군가 이제 슬슬 끝내도 되겠다는 판단을 하면 ‘카운트 다운’ 버튼을 누르는데, 그럼 그게 모든 플레이어에게 전달되는 거죠.

장재호 그러면 5, 4, 3, 2, 1 하고 딱 끝내요.

신예슬 시한폭탄 같네요. 그렇다면 퍼포먼스를 위한 악보를 따로 만드시나요?

이진원 텍스트로 악보를 만들어요. 디테일하게 써놓은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섹션별로 러프한 구성만 적어놓기도 하고요. 이런 것도 쓰여 있어요. ‘신나는 느낌으로’.

박규원 ‘쿵쿵’도.

장재호 ‘필터값 0.5’. 이런 것도.

신예슬 퍼포머의 역량은 태싯 그룹에게 얼마나 중요할까요? <Game Over>에서는 실제로 테트리스를 해야 하고 <훈민정악> 같은 작업에서는 관객의 반응을 어느 정도 유도해야 하니 단순히 설계된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연주에 몰입하고 무대와 잘 호흡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진원 이게 즉흥이다 보니까 연주자의 끼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되게 중요하죠.

신예슬 여러 차원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시스템과 퍼포머의 관계, 퍼포머들끼리의 관계, 관객과의 관계 등 작품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이 그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듯한데, 이런 상호작용에 대한 생각이 따로 있으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장재호 관객과 연주자의 경계에 관한 생각은 해봤어요.

이진원 연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작업을 통해 개념적인 메시지를 준다기보다는 저희가 재밌어하는 것들을 시스템으로 잘 구축해서 관객들이 같이 즐겨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고, 그래서 설명을 하기보다는 직접 경험할 수 있게 시스템을 열심히 설계하는 편이에요.

장재호 좀 어렴풋하지만 뭔가 느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려고 하죠. 저희가 늘 얘기하는 건 ‘머리로 만들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거예요. 한편 저 같은 경우는 이런 생각이 있어요. 항상 예술이라는 게 작품만 있다기보다는 그 주변의 컨텍스트 속에서 존재하잖아요. 지금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한 컨텍스트는 컴퓨터 안에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이에요. 다들 어느 정도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전자음에 익숙하니까 관객마다 편차는 있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이 자동으로 되는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직관적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저희 작업이 딱 한 장르에 맞아떨어진다기보다는 여러 분야에 걸쳐있으니까 저마다 저희 작업을 감상하는 포인트가 되게 다른 것 같아요.

이진원 그런 것 같아요. 태싯 그룹의 작업이 여러 분야에 걸쳐있기 때문에 섣불리 아무도 아무 얘기를 안 한다는 문제도 있지만요. (웃음) 음악도 있고 이미지도 있고 게임도 있고 프로그래밍도 있으니까, 이를테면 프로그래밍 잘하는 사람은 음악에 대해 비평하기를 조금 꺼리겠죠.

장재호 또 흔히 예술계에서 작품이 사고 팔리고 하는 이 모든 유통 구조, 태싯의 작업은 그 구조에 끼어 들어가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신예슬 그런 어려움도 있으시겠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방면으로 진입로가 형성되어 있는 만큼 태싯의 작업이 끼친 영향, 특히 미디어에 관심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준 영향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저 역시도 많은 영향을 받은 관객 중 하나고요. 몇 년 전부터는 위사(WeSA, We are Sound Artist)라는 이름으로 오디오비주얼 페스티벌도 개최하고 계시는데, 이 행사 이후로 확실히 작가층이 두터워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진원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늘긴 늘은 것 같아요. 아츠 인큐베이터의 윤소진이 기획하는 ATM 같은 행사에서 오디오비주얼도 다루고, 박성민 작가가 진행하는 엠비언트 무도 생겼고, 와트엠도 계속되고 있고요.

장재호 다만 돌파구가 좀 있어야 될 것 같긴 해요. 여태 하던 대로만 하면 좀 힘들어서요.

박규원 장르가 모호하다는 문제도 있어요. 지원 사업을 보면 위사가 들어갈 자리는 다원예술이긴 한데 그 분야가 점점 없어지는 추세라, 위사가 들어갈 자리가 없기도 하죠.

이진원 그래서 최근에는 위사도 작업이다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걸 다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신예슬 이번 10주년 공연 프로그램은 <Morse ㅋungㅋung>, <Analytical>, <System-Ambient>, <훈민정악>, <Game Over>, <Drumming> 등 그간의 주요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난 작업을 쭉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 같은데, 이번 공연 이후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될까요?

이진원 우선 이번 공연은 두 파트로 나뉘는데, 파트 1에서는 연주자 세 명이 <Morse ㅋungㅋung>, <Analytical>, <System 1>을 연주하고 파트 2에서는 연주자 여섯 명이 나머지 작품들을 연주해요. 지난 작업들이긴 한데 파트 1에서 연주할 것들은 저희가 작업양에 치여서 간과했던 부분을 많이 수정한 작품들이에요. 공연 이후로는 기본적으로는 하고 싶은 걸 계속하겠지만 저희가 다 같이 동의한 부분은 게임 형식을 좀 놓고 다른 쪽을 좀 더 해보자는 거예요. 다른 쪽이 뭔지는 얘기를 차차 더 해나가려고요.

장재호 저희 태싯이 만들어온 어떤 틀이 서서히 보이는 것 같아요. 이제 그걸 부수고 다른 데로 가볼 필요도 있겠죠.

신예슬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